기대 반, 걱정 반으로 본 영화관
주말 저녁, 드래곤 길들이기 실사화 영화를 보러 갔다. 솔직히 마음은 복잡했다. 애니메이션으로 봐왔던 히컵과 투슬리스의 이야기가 실사로 나온다니, 기대와 걱정이 반반씩 섞여있었다.
애니메이션의 그 따뜻한 감동을 실사가 과연 담아낼 수 있을까? CG로 만든 드래곤이 진짜 투슬리스처럼 느껴질까? 혹시 원작의 깊은 메시지는 사라지고 볼거리만 남은 영화가 되지는 않을까?
영화관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비교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내가 놓쳤던 더 깊은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300년 전쟁의 진실, 혐오의 뿌리
버크 섬의 바이킹들은 300년 동안 드래곤과 전쟁을 해왔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바이킹들의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그들에게 드래곤은 그저 죽여야 할 괴물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무섭고, 위험하고, 자신들과 다르니까.
바이킹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드래곤은 적이다"라고 배웠다. 의문을 품을 여지도 없이,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들였다. 아버지 스토익을 비롯한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드래곤이 왜 공격하는지,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이 300년 전쟁의 진짜 원인은 서로에 대한 무지였다는 것을. 드래곤들도 사실은 레드 데스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억압받는 피해자였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바이킹 마을을 습격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이킹들은 이런 상황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드래곤=적"이라는 공식에 갇혀서, 진실을 보려 하지 않았다. 무서우니까 먼저 공격하고, 공격당하니까 더 무서워하는 악순환이 300년간 이어진 것이다.
히컵이 보여준 다른 선택, 진짜 용기
그런데 히컵은 달랐다. 모든 바이킹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드래곤 훈련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드래곤을 공격하는 방법을 배울 때, 히컵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투슬리스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상처 입은 나이트 퓨리를 발견한 히컵은 칼을 들고 있었다. 드래곤을 죽이면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우러러볼 영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히컵은 투슬리스의 눈을 보고 칼을 내려놓았다.
"이 녀석도 나처럼 무서워하고 있구나."
히컵이 보여준 건 정말 대단한 용기였다. 300년간 내려온 관념에 맞서는 용기, 다른 사람들이 모두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다가가는 용기였다.
히컵은 투슬리스를 관찰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기뻐하는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그 과정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드래곤도 자신들과 같은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히컵의 이런 태도는 투슬리스에게도 전해졌다. 서로를 적으로 보지 않고 친구로 받아들이는 순간, 300년 전쟁의 해답이 보였다. 문제는 드래곤이 아니라 서로를 알려고 하지 않았던 우리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버크 섬'의 모습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버크 섬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우리 주변에도 '드래곤'으로 취급받는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은 어떨까?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경계하거나 배척하지는 않나? 마치 바이킹들이 드래곤을 무서워했던 것처럼, 우리도 낯선 것들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성소수자들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거리감을 두거나 혐오 표현을 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히컵이 투슬리스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을까?
심지어 세대 간의 갈등도 비슷하다. "요즘 젊은 애들은", "꼰대들은"이라는 말로 서로를 일반화하고 적대시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고,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보다는 "저들은 이해할 수 없어"라고 단정 지어버린다.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편'과 '저들'로 나누어 생각한다. 그리고 '저들'은 이해할 필요가 없는, 때로는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마치 300년간 바이킹들이 드래곤을 대했던 것처럼.
우리가 배워야 할 진짜 용기
그렇다면 우리는 히컵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첫 번째는 의심하는 용기다. 모든 사람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도 한 번쯤은 의문을 품어보자. "정말로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일까?",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일까?", "혹시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두 번째는 다가가는 용기다. 무서워서, 낯설어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야말로 한 걸음 더 다가가 보자. 히컵이 투슬리스에게 손을 뻗었던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보자.
세 번째는 들어주는 용기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짜로 들어보자. 반박하려고 듣지 말고, 이해하려고 들어보자.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해보자.
네 번째는 틀릴 수 있다는 용기다. 내가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자. 바이킹들처럼 300년 동안 잘못된 길을 걷지 않으려면, 때로는 내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변화하는 용기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자. 스토익도 결국 히컵의 말을 듣고 드래곤과 함께 싸우는 길을 선택했지 않았나.
작은 변화가 만드는 큰 기적
히컵 한 사람의 다른 선택이 300년 전쟁을 끝냈다. 우리 각자의 작은 변화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다름을 적으로 만드는 대신, 다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회.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첫 걸음을 오늘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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